F1은 단순히 속도를 겨루는 무대가 아니라, 규정이라는 틀 안에서 기술과 전략을 겨루는 스포츠이다. 규정은 매 시즌마다 크고 작은 변화를 거듭해왔으며, 그 변화는 경기 양상뿐 아니라 드라이버의 생존 가능성, 팀의 기술적 접근, 팬들의 시청 경험까지도 좌우하였다. 본문에서는 F1 규정이 시대별로 어떠한 흐름 속에서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배경에 어떤 사회적·기술적 요인이 작용했는지를 살펴본다.
1. 초기 규정: 단순한 틀에서 시작된 포뮬러
1950년 첫 세계선수권이 출범했을 당시 규정은 지금과 비교하면 극히 단순하였다. 엔진 배기량 제한이 있었지만 기술적 다양성을 허용했고, 안전 장치나 카 메카니즘에 대한 세부 규정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자유도는 창의적 차량 설계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드라이버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였다.
예컨대 1950~60년대 초반까지는 드라이버의 헬멧 착용조차 의무가 아니었으며, 연료 탱크가 차량 옆면에 노출되어 화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당시 규정의 목적은 ‘공정한 경쟁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안전’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점차 부상하였다.
2. 1970년대: 안전 강화를 위한 대대적 개혁
1970년대는 규정 변화의 분수령이었다. 당시 수많은 드라이버들이 경기 중 사망하는 비극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FIA는 대대적인 안전 규제 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표적으로 서킷 설계에서 탈출 공간(run-off area)의 설치가 의무화되었고, 차량 자체에도 롤바, 화재 방지 시스템, 더 강력한 안전벨트가 도입되었다. 또한 연료 충전 규정도 강화되어 화재 위험이 대폭 줄었다. 이 시기의 규정 변화는 단순한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드라이버 보호라는 본질적 과제를 전면에 내세운 첫 시도로 평가된다.
또한 1970년대 후반부터 공기역학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라운드 이펙트(ground effect)’의 남용을 억제하고 차량이 서킷에 붙어 다니는 정도를 조절하였다. 이는 F1이 단순히 속도의 추구를 넘어 ‘통제 가능한 기술 발전’을 지향하게 된 계기였다.
3. 1980~90년대: 기술 규제와 상업화의 균형
1980년대는 터보 엔진이 F1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최고 1500마력에 달하는 괴물 같은 출력이 등장했으나, 지나친 속도와 불안정성이 문제로 떠올랐다. FIA는 결국 터보 엔진의 사용을 점차 제한하고 1989년 완전히 금지하였다. 대신 자연흡기 엔진 규정을 도입해 출력을 줄이고 경기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전자 제어 장치, 반자동 변속기, 액티브 서스펜션 같은 첨단 기술이 등장했지만, 과도한 기술 의존이 ‘드라이버의 역할 축소’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FIA는 특정 전자 장비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조정하였다.
한편 이 시기는 상업적 요소가 본격적으로 결합되면서, 규정은 경기 자체뿐 아니라 중계권, 광고 노출, 스폰서십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규정은 단순히 기술을 관리하는 도구가 아니라, F1이라는 산업 전체의 질서를 세우는 장치가 되었다.
4. 2000년대: 속도와 안전 사이의 줄타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규정은 점차 ‘속도 억제’와 ‘안전 강화’를 동시에 지향하게 되었다.
먼저 차량의 에어로다이내믹스가 지나치게 발전하면서 추월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겼다. 이에 FIA는 2009년 대대적인 규정 개정을 통해 리어윙, 프런트윙의 크기와 형태를 단순화하고, 타이어 규격도 변경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경기의 박진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또한 슈마허와 페라리의 독주 체제가 이어지던 시기, FIA는 엔진 규제와 테스트 제한을 강화하여 특정 팀의 압도적 우위를 견제했다. 이는 F1이 단순한 ‘최강 팀의 무대’가 아니라, 다양한 팀이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안전 측면에서는 드라이버 보호 장치, 충돌 테스트, 그리고 의료 체계 강화가 이루어졌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는 사고 발생 시 구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표준화된 안전 프로토콜이 도입되었다.
5. 2010년대 이후: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의 도전
2014년, F1은 하이브리드 파워 유닛 시대를 열었다. 기존의 자연흡기 V8 엔진 대신, 에너지 회수 시스템(ERS)을 탑재한 터보 하이브리드 V6 엔진이 도입된 것이다. 이 변화는 F1이 단순히 ‘최고 속도’를 향한 경쟁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친환경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스포츠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연료 사용량과 유량 제한이 도입되면서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가 경기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규정 변화는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환경 규제와 맥락을 같이하며, 자동차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안전 규정도 꾸준히 발전하였다. 2018년에는 드라이버 머리를 보호하는 ‘헤일로(Halo)’ 장치가 의무화되었는데, 이는 초기에는 미관 문제로 논란이 많았으나 실제로 수차례 생명을 구하면서 필수 장치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2022년 새로운 기술 규정이 도입되어, ‘그라운드 이펙트’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차량을 설계하고, 공기역학을 단순화하여 추월 기회를 늘리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결론: 규정은 F1의 진화의 축
F1의 역사는 곧 규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규정은 경기의 본질을 규정짓는 동시에, 안전을 보장하고, 기술 혁신의 방향을 결정하며, 스포츠 산업 전체를 관리하는 핵심 도구로 기능해왔다. 단순한 제한이 아니라, 진화를 위한 기준점으로서 규정은 F1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이끌고 있다. 앞으로도 규정 변화는 기술, 환경, 사회적 요구와 맞물려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속에서 F1은 더욱 완성도 높은 스포츠로 성장할 것이다.